1.35. 질병예방에 무관심한 소비자
① 이슈
◯ 국민들은 질병예방을 위한 건강관리 서비스에 이용료를 지불할 의사가 낮습니다. 이는 현 의료체계의 두 가지 특징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는 의료서비스 이용이 편리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진단 및 치료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는 충분한 수준의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여 의료서비스 이용이 대체로 편리한 편이지만, 질병치료를 위해 손쉽게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있다 보니 건강관리 및 질병예방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실제로 건강검진 수검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뇨병과 같은 대사증후군 위험요인(복부비만, 고혈압 등)을 보유한 사람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사증후군 위험요인은 건강관리를 통해 극복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유한 사람들의 비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국민들이 대체적으로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 디지털 헬스케어는 기존 의학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예방 및 관리영역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다수의 스타트업들은 일상생활의 개인건강기록(PHR) 데이터 기반의 건강관리와 만성질환 관리 목적의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여 상용화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국내 수가체계는 아직까지 대부분의 건강관리 및 질병예방, 질병의 사후관리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서비스가 수가체계에 포함된다면 소비자는 보험자의 지원을 받습니다. 즉, 수가체계에 포함되지 않은 서비스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에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② 개선 방향 → 질병예방을 위한 건강관리 수가 도입
◯ 질병예방 및 관리를 수가체계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인허가 및 평가 절차 구축도 함께 추진해야 합니다. 특히, 임상효과를 검증하고 수가를 책정하는 방식은 진단 및 치료 영역의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방식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치료제 또는 제품의 경우 환자의 건강 회복 수준을 척도로 임상효과를 판단할 수 있지만, 잠재적 위협에 대한 예방은 이 척도를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방 및 관리는 지속적으로 관련 서비스를 이용해야 그 효과가 발휘되기 때문에 수가를 책정 시 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 미국은 2010년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을 시행하였습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국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 법의 취지에 따라 진료, 교육, IT 서비스 3개 분야에서 시행하는 예방 의료에 대해 수가를 신설하였습니다. 진료 분야는 예방 목적의 상담, 검사, 진료 등의 의료행위에 대해 수가를 제공하고, 교육 프로그램과 IT 서비스는 보건의료재정청(CMS)의 인증을 획득한 서비스에 한하여 수가를 적용합니다.
◯ IT 서비스 이용에 대한 수가 지급은 기본적으로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합니다. 사용자(잠재적 환자)는 인증된 IT 서비스에 가입하고, IT 서비스를 제공한 기업은 가입한 사용자에게 예방 및 관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기업이 사용자의 서비스 이용현황을 CMS에 등록하면, CMS가 해당 기업에 수가를 지급하는 구조입니다.
1.36. 혁신 서비스 도입에 소극적인 의료기관
① 이슈
◯ 병원들의 주 수입원인 진료비는 일반적으로 지불단위에 따라 행위별 수가제, 일당정액제, 포괄수가제, 인두제, 총액계약제 등 크게 다섯 가지 방법으로 책정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 진료비 지불방식으로 설정하고, 요양병원 입원진료에 대해서는 일당정액제를, 그리고 특정 7개 질병군에 대해서는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행위당 수가를 책정하고, 일당정액제는 1일 단위로 수가를 책정하는 방법으로 다섯 가지 지불 방법 중 지불 단위가 가장 작습니다.
◯ 문제는 실질적 구매자인 병원이 진료비 절감이나 질병예방에 대한 관심이 낮다는 점입니다. 병원의 수입이 의료행위 또는 소요기간이라는 지불단위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의료기관에 적용되는 행위별 수가제의 경우, 환자 수나 의료행위가 줄어들면 수입 감소로 직결되므로 병원이 환자들의 진료비를 절감시킬 유인이 적습니다.
◯ 따라서 병원은 진료비 절감이나 질병예방에 유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할 동기가 적습니다.
② 개선 방향 → 혁신 기술 도입 확산 인센티브 지급
◯ 혁신형 의료기기와 서비스가 개발되고 수가가 책정되었다 할지라도 의료기관들은 이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이기 때문에 진료 혁신형 의료기기 및 서비스 도입을 확산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비)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초기 시장 형성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 이러한 지원제도를 통해 시장이 형성되는 기간 동안 정부 차원에서는 질병 예방·관리 영역으로 확장하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진료의 효율성과 안전성 확대를 위한 비용 보전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1.37. 의료체계 특성상 제한적인 시장 규모
① 이슈
◯ 건강보험 의료비 지출규모는 2016년 기준 78조 원입니다. 이 중 82.7%인 65조 원이 급여 지출로, 국가에서 정한 단가에 따라 수가가 지급됩니다. 하지만 연세대학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원가보전율은 84.2%, 종합병원은 75.2%, 병원은 66.6%로 요양기관 종별과 무관하게 수가가 원가를 보전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즉 국가가 수가를 통제하고, 그 수가는 원가가 보전되지 않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출시할 제품이나 서비스가 목표했던 수익성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2017년 8월 정부는 비급여 항목의 급여 확대를 주요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정책은 미용·성형 등을 제외한 의학적 필요성이 있는 모든 비급여를 건강보험으로 편입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어줄 수 있는 정책입니다. 하지만 의료기기 산업 측면에서 급여항목의 확대는 국가에서 가격을 지정하는 항목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급여항목이 원가를 보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급여가 확대되면 시장 확대 가능성이 더욱 낮아질 수 있습니다.
◯ 국민들에게 장점이 많은 우리나라 의료체계 근간을 산업의 활성화만을 위해 바꿀 수는 없지만, 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당면하고 있는 불리한 부분들을 지원하는 방안 역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② 개선 방향 →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국가적 지원
◯ 헬스케어 산업은 국경을 넘기 가장 까다로운 산업 중 하나입니다. 각 나라는 고유한 보건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제품 또는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나라별 진입 규제, 인허가 규제 등의 요구사항에 모두 부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하지만 스타트업은 대부분 그만한 자금력과 역량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 물론 정부기관의 지원과는 별개로 민간기업 간의 컨소시엄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 세계가 헬스케어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정하고 육성하려 하는 경쟁 속에서 생존하려면, 정부의 지원 체계와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