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품목허가부터 수가를 받기까지 긴 시간 소요
① 이슈
◯ 한국은 국가 주도의 단일 건강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위해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는 약제, 행위 및 치료제에 한하여 급여 여부를 판단하고 수가를 책정하고 있습니다. 의료기기와 마찬가지로 혁신 의료기기도 시장 진입을 위해 일련의 절차를 거쳐 인허가 및 수가를 책정받고 있습니다.
◯ 혁신 의료기기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하여 총 세 단계의 절차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식약처의 품목허가를 위한 인허가 절차로, 인체에 물리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안전성을 평가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이 임상 현장에서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평가합니다. 마지막은 심평원의 보험등재 절차로, 기술의 경제성을 중심으로 급여 여부와 수가를 책정합니다.
◯ 물론 신속히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제품의 인허가만 받은 뒤 제품을 별도의 수가 책정 없이 의료기관 등에 개별적으로 판매할 수 있지만,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구매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수가 없이는 의료기기 구매 비용을 보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혁신 의료기기는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 편입되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체계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약처의 인허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 및 심평원의 보험등재 절차를 모두 통과하여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혁신 의료기기가 출시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 하지만 해외의 경우 국내와는 달리 인허가와 보험등재 절차만 거치면 시장에 바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해외 의료기술 평가기관은 신의료기술을 사용한 제품을 출시 전에 별도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역할은 주로 공보험 기관을 대상으로 급여 정책 관련 자문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기출시된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모니터링하여 각 기술에 책정된 수가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업무를 주로 수행합니다.
◯ 해외 역시 국내와 마찬가지로 수가를 받아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만 다보험체계를 보유한 국가의 경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대표적인 다보험체계 국가인 미국의 경우 굳이 공보험 수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은 공보험 기관의 수가를 책정을 받기 전에 민간보험사와 별도로 계약을 체결하여 신속하게 제품을 공급합니다. 민간 보험 시장의 원격관리 및 모니터링 등 디지털 헬스케어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수요가 높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당뇨관리 서비스인 블루스타(Bluestar)는 2013년에 민간보험사 두 곳으로부터 수가를 받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제2형 당뇨를 보유한 고객들 중 의사로부터 해당 제품을 처방받은 고객들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개선 방향 → 인허가·평가 단축 제도 도입
◯ 2017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원격의료를 중심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를 확장하겠다는 ‘애니웨어 투 애니웨어’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였습니다. 중국은 2016년에 ‘건강중국 2030 (健康中國2030)’을 필두로 자국의 헬스케어 산업을 2030년까지 16조 위안(약 2,700조 원) 규모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와 같이 주요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헬스케어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정하였으며 헬스케어 산업 내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뛰어난 기술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다양한 지원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의료체계의 특성으로 인허가·평가 절차가 타 국가에 비해 길고 복잡하고, 이로 인해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혁신기술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먼저, 국내 식약처의 인허가 절차에서 혁신적이고 유망한 기술을 신속하게 평가할 수 있는 패스트 트랙(Fast-track)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이 신속히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혁신기술을 더욱 빠르게 상용화하여 국민에게 편익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세계 최초의 기술, 중증 및 희귀질환을 다루는 제품을 신속하게 인허가하는 패스트 트랙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패스트 트랙 제도의 핵심은 규제기관과 스타트업이 전주기적으로 긴밀하게 협조하여 인허가 절차 기간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 소프트웨어 기반 의료기기의 경우 제품이 아닌 제조사를 인증하여 제품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소프트웨어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차후에도 업데이트를 통해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발 접근성이 하드웨어 대비 상대적으로 낮아 심사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 효율적인 규제 방안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FDA는 ‘사전인증(Pre-Cert) 제도’라는 시범 사업을 운영 중입니다.. 이 제도를 통해 FDA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제조사들을 인증하고 이들이 제품을 별도의 인허가 절차 없이 신고서 제출 후 출시할 수 있게 허용해주고 있습니다.
◯ 하지만 식약처가 이러한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고자 한다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FDA 역시 ‘사전인증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2017년부터 2018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제도를 다듬고 있습니다. FDA는 환자 안전 및 제품 품질과 같은 정량적인 지표 외에도 임상적 책임, 사이버 상 책임 및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와 같이 매우 정성적인 요소로 제조사를 평가하고 선정합니다. 이와 같이 정성적인 지표를 정량화해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향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권한을 어떤 기준으로 회수할 것인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꾸준한 사후평가가 이루어지는 만큼 제조사들이 오히려 부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제도의 본래 취지인 진입 장벽 완화를 무색하게 만들지 않도록 완급조절이 필요합니다.
1.33. 규제기관의 전문 인력 부족
① 이슈
◯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의 핵심은 전통적 의료기기와는 달리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맞춰져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폭넓게 활용하여 기존에 제공되지 못하던 부가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인허가 규제기관들은 최근까지 하드웨어 중심의 의료기기를 다루어왔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이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 발전 속도 역시 빨라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식약처는 산하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내 의료기기심사부를 통해 의료기기 인허가 및 관련 가이드라인의 제·개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혁신의료기기의 경우 디지털 헬스케어를 담당하는 '첨단의료기기과'가 위 절차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내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가 다양해지고 그 수준 또한 높아졌음에도 인력이 부족한 실정. 또한 기술의 인허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지만 하드웨어 심사까지 담당하고 있어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타 심사과와 협업 혹은 선제적인 가이드라인 제공은 쉽지 않습니다.
◯ 미국 FDA는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이 기조의 연장선으로 FDA는 2017년에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들로 구성된 디지털 헬스 유닛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안을 발표하였습니다. 디지털 유닛을 기반으로 전문성을 키워 급변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고, 이와 관련된 지원제도와 가이드라인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에 맞춰 FDA는 모바일 의료 애플리케이션, 빅데이터 등 디지털 헬스케어 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채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또한 추가적인 전문성 확보가 용이하도록 외부 전문가를 파트 타임으로 채용할 수 있는 EIR(Entrepreneurs in Residence) 프로그램 운영 계획도 마련하였습니다.
◯ 식약처도 미국 FDA 사례와 같이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문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② 개선 방향 → 전문성 확보를 위한 역량강화
◯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를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 영역은 전통적인 의료기기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기의 특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소프트웨어는 그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규제기관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 이를 위해 우선, 혁신 의료기기 인허가 심사를 하드웨어 영역과 소프트웨어 영역으로 이원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드웨어 영역은 기존 심혈관 및 정형재활기기과 등에서 전통적인 의료기기를 담당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기술 및 소프트웨어는 첨단의료기기과에서 심사를 진행하면 됩니다. 이 경우 혁신의료기기를 심사하는 조직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어 더욱 집중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하고 산업을 육성할 수 있습니다.
◯ 전문성을 확보한 심사조직은 수준 높은 의료기기 심사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개정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기술 발전 속도와 개발되는 제품 수를 고려했을 때, 이에 상응한 체계적인 대응이 중요. 가이드라인을 법제화시키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 현재 가이드라인상에는 AI 기술을 사용한 의료기기의 경우 후향적 임상시험을 허용하지만 법적으로는 명시되지 않아 절차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이처럼 가이드라인을 제도화하고 원활히 제·개정하기 위해서는 부서별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1.34. 혁신 기술 통과 어려운 신의료기술평가
① 이슈
◯ 2018년 5월, 국내 AI기반의 의료기기 제조사인 뷰노가 업계 최초로 식약처로부터 품목허가를 성공적으로 받았다고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해당 제조사가 마케팅 시 ‘최초’라는 타이틀을 오히려 쓰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도 함께 언급하였습니다. 신의료기술평가에 너무나 오랜 기간이 소요되어 복지부가 이를 기존 기술로 분류해 주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 기존 기술로 분류된 제품은 곧바로 시장 진입이 가능하지만, 기존 기술로 분류된 만큼 해당 기술에 이미 책정된 수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더라도 효과성 및 혁신성 등이 수가에 반영되지 않아 신기술 개발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울 확률이 높습니다.
◯ 신의료기술평가는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고 신기술에 적합한 가치를 평가받기 위한 필수 절차이지만, 스타트업들에게는 또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신기술이 통과하기 어려운 국내 신의료기술평가의 평가 방식과 긴 평가 기간 때문입니다. 신의료기술평가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논문과 같은 근거문헌을 중심으로 한 평가입니다. 의료기기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임상 연구가 아닌,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혁신 기술은 관련한 연구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타트업들은 인력과 자원이 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거문헌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적인 임상 실험을 진행하고 논문을 등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처럼 근거문헌을 생성하는 데 시간이 더 소요되기 때문에 제품의 혁신성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여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최소한의 안전성이 보장된 일부 기술에 한하여 선정된 의료기관에서의 사용을 허용해주는 ‘제한적 의료기술평가 제도’가 있지만,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이 매우 한정적이며, 3년 동안 비급여로만 진료가 허용되기 때문에 고가일 경우 환자 접근성이 낮아 충분한 데이터를 쌓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제한적 의료기술평가와 유사하게 임상 데이터 축적을 목적으로 신의료기술평가를 1년간 유예해주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 역시 실효성이 낮습니다. 이 제도는 신의료기술의 효능 및 안전성이 기존 기술과 비교된 문헌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통합운영심사 제도는 여전히 활성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첫째, 이 절차를 따를 수 있는 대상이 의료기기와 행위목적이 일치하거나 유사한 경우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 보험수가등재 절차는 통합운영 심사와 별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전체를 통합한 절차가 부재한 실정이며, 셋째, 인허가에 통과하더라도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하면 처음부터 모든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합니다.
② 개선 방향 → 신의료기술의 신속한 시장 진출 지원
◯ 신의료기술평가는 혁신 기술일수록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신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는 근거문헌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검증 절차가 자칫 혁신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혁신적이고 잠재가치가 높은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들이 더욱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 첫째, 체외진단기기에 한하여 단계적으로 적용될 예정인 ‘선진입-후평가’ 제도를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까지 확대 적용해야 합니다. 안전성이 확보된 제품은 시장 진입을 허용해서 실제 임상자료를 축적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사후평가를 통해 유효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제품은 별도의 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 제도를 효과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혁신적이고 잠재가치가 높은 제품을 대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담당기관의 한정된 자원으로는 수많은 제품을 모니터링을 할 수 없어 부적합한 제품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회수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검증 없는 부적합한 제품들의 시장 난입은 의료기관과 환자에게 효과 대비 의료비 증가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둘째,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유망 기술들을 주기적으로 발굴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으로부터 발굴된 유망 기술을 사용한 스타트업들은 이미 공시된 평가결과를 활용하여 신속히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해당 제품들을 심사·평가하는 심평원 등 규제기관과 정책결정자들도 마찬가지로 기술에 대한 영향력, 경제성 등의 정보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합니다.
◯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이미 과거에 ‘신개발 유망의료기술 탐색’이라는 시범 사업을 통해 쌓은 역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개발 유망의료기술 탐색 제도를 활성화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2013년 H-SIGHT이라는 신기술 탐색툴을 개발하였으며, 이듬해에 시범 사업을 통해 국내 실정에 맞게 최적화시켜 유망 의료기술을 발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또한 2013년 아시아 최초로 유로스캔(EuroScan)의 회원기구로 인정받아 해외 유관 기관과 국내 발굴 사례 및 평가 방법 등을 공유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였습니다.